[칼럼] 물부진력(物不盡力), 부족함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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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물부진력(物不盡力), 부족함의 역설
  • 전종만
  • 승인 2022.07.26 17:45
  • 호수 1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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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만&nbsp;수원교당 교도<br>​​​​​​​하나병원 원장
전종만&nbsp;수원교당 교도<br>하나병원 원장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바흠이라는 농부는 어느 날 바시키르 지역의 깜짝 놀랄만한 부동산 정보를 얻는다.

그곳의 땅은 면적으로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걸어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면 걸은 만큼의 땅을 단돈 1,000루불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바흠은 땅을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에 걷고 또 걷는다. 심장이 터질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땅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었다. 일몰 직전에 돌아온 바흠은 결국 피를 토하며 죽고 만다. 장례식 날. 바흠의 하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신의 치수를 잰 뒤 괭이를 들고 무덤을 팠다. 1.7 제곱미터.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딱 그만큼이 전부였다. 물부진력(物不盡力).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친 무리는 삼가라. 즉, 물질적인 욕심을 넘치게 채우지 말라는 뜻이다. 대산종사께서는 매사에 과한 것보다는 조금 부족한 것이 좋으니 항상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가지도록 당부하였다. 경제학자 오종남 교수는 행복은 ‘성취한 것/바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열 가지를 바라는데 여섯 가지를 성취했으면 6/10 즉, 60%의 행복감을 얻는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채우지 못한 40%에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열 가지를 성취한다고 만족스러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성취에 정신이 팔린 사이 또 다른 바라는 것이 생겨 행복감은 100%에 미치지 못한다. 100%의 행복감은 성취를 늘리기보다 바라는 것을 줄일 때 더 빨리 찾아온다. 만약 바라는 것을 다섯 가지로 줄인다면 여섯 가지만 성취를 해도 120%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100%의 충만한 행복감 외에 20%의 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릴 수 있으니 욕심을 줄이면 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모두 누릴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정신수양의 목적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을 양성’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물질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욕심은 충족될 수 없으니 줄이고 비우지 않으면 큰 화근이 되기도 한다.

열대지방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잡기 위해 독특한 사냥법을 이용한다. 통나무나 단단한 흙더미에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나 곡물을 넣어 놓는다. 그러면 냄새를 맡고 다가온 원숭이가 간신히 손을 넣어 곡물을 한 주먹 가득 움켜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람이 다가가도 원숭이는 그 한 줌의 곡물을 놓지 않아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만다. 손을 펴서 곡물만 내려놓으면 빠져나갈 수 있지만 한 주먹의 욕심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평생 자유를 억압당하는 신세가 된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30개 국가의 행복도 연구를 통해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그 이후로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조금 부족한 듯한 삶에는 넘치지 않는 여유가 있고 채움을 향한 노력이 있다. 경영의 신이라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의 성공 비결 세 가지로 가난, 무지, 허약함을 꼽았다. 돈이 없어 저축에 힘썼고 중학교도 못 나와 누구에게든 배우려 했으며 병치레가 잦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의 부족함은 성공을 가져다준 원동력이 되었다. 끝이 없는 욕심에 자신을 소진 시키지 않고 부족한 듯 남겨둘 것. 부족함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이끄는 넉넉함과 여유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7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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